1. 그들의 관계
"나랑 세모, 사귀기로 했어."
두리는 하나의 말에 별 미동이 없었다.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말을 꺼내는 하나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그런 두리의 반응에 재미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바라봤다. 세모에게서 온 쪼꼬톡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저울질 하더니 결국 권세모냐?"
쪼꼬, 쪼꼬, 쪼꼬톡.
"그게 무슨말이야."
두리의 말과 함께 울려퍼진 쪼꼬톡 알림음에 하나가 다시 물었다. 그런 모습에 두리는 한숨을 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금 들어온 하나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두리는 그런 하나에게 다가가 셔츠깃을 완전 풀어헤쳤다.
"차두리, 이게 무슨짓이야!"
갑작스런 두리의 행동에 하나는 얼굴이 시뻘게진채로 소리쳤다. 바로 앞에서 소리 치는게 시끄럽지도 않은지 얼굴의 표정 변화 없이 목선에서 가슴부근까지 훑어본 두리는 무덤덤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했네."
그게 무슨 뜻인지 단숨에 파악한 하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게졌다. 도운이 자고 있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내면 깰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하나는 조용히 숨죽여 말했다.
"사귀는 사이, 그것도 성인인데 못할 이유가 뭐니?"
"그래, 그렇겠지. 좋았냐? 니가 깔리는거지?"
"뭐? 넌 말을 해도-"
"네 말처럼 성인인데 이런말도 못해?"
억양없이 단조로운 말투. 평소와는 다른 두리의 모습에 당황한건 하나였다. 자신이 짜증을 내어도 항상 웃으며 맞받아치던 두리가 오늘따라 조용했고 진지했으며 침착했다.
하나는 그런 두리를 애써 모른척하며 옷을 여몄다. 그의 흔적을 다른이, 그것도 쌍둥이 동생에게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웠다.
두리는 그런 하나를 보다가 자켓을 집어들고 방을 나섰다. 뒤에서 하나가 어디가냐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물어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라 가죽자켓을 입은 두리는 차고로 가려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10년을 넘게 자신과 함께한 Y의 인공지능은 무서울정도로 두리를 잘 꿰차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직 12시가 되지 않은 대도시는 여전히 많은 네온사인이 번쩍거렸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그는 시선을 돌려 화려한 불빛과는 떨어진 거리로 걸어갔다. 대도시 중에서도 인적이 드문 공간, 황량하게 세워져 있는 오공폐차장이 보였다. 두리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불빛 하나 없는 곳, 두리는 담을 타고 넘어가 급하게 한 사람을 찾았다.
타이어가 쌓여 있는 곳 위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오공이 있었다. 두리는 그 모습에 발걸음을 빨리하여 그에게 다가갔다. 탁탁, 뛰는 소리가 남에도 오공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여기서 뭐해."
오공은 대답이 없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오공의 시선 끝에는 안개가 끼어있는 하늘에 유독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었다.
"독고오공."
두번의 부름. 그럼에도 오공은 대답이 없다. 그는 마치 넋이 나간것처럼 멍하니 앉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리는 그를 보다가 이내 바닥에 널부러진 휴대폰을 주었다. 화면을 켜자 쪼꼬톡이 보였다. 발신자는 권세모였다.
[나 이제 그 애랑 사귀기로 함^^ 조언 고맙다. 나중에 밥 한끼 살게.]
[사실 하나랑 사귀기로 했어. 너한테 제일 먼저 말고 싶더라. 축하해줘.]
그가 쪼꼬톡을 보낸 시간은 20시 정도 였다. 독고오공 성격에 저 메시지를 보자마자 저상태로 계속 있었을게 뻔했다. 두리는 휴대폰 화면을 끄고 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아직도 멍하게 있는 오공을 깨울 방법. 충격 요법에 남의 사생활이지만, 저대로 가다간 그대로 석상이 될 것만 같았다.
"차하나랑 권세모, 어디까지 갔는줄 아냐?"
"......"
"걔 몸에 자국 많이 남겼더라."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마음 아팠다. 자국이 남겨지는 과정들.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그게 무엇인지 충분히 아는 나이였다.
오공의 고개가 서서히 돌려졌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탁한 눈동자에 서서히 눈물이 맺혀 방울방울 떨어졌다. 두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은 금세 가득 차올라 폭포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내 조금씩 흐느끼는 소리가 커지고, 그는 한참을 울었다. 두리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오공이 지쳐 울음이 그칠 때 즈음, 두리는 오공의 앞에 섰다.
"정말 웃기지. 연애 상담을 도와주던 친구가 짝사랑 하던 애랑 사귀고, 자고."
"두리야...."
드디어 오공의 입이 열렸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목소리는 이미 모두 갈라져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공은 아직도 눈물을 모두 쏟아내지 않았는지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말했다.
"난 세모가 좋아하는 애가, 하나인줄 몰랐어."
"그랬겠지. 넌 차하나 말고는 관심 없었으니까. 다 아는걸 너만 몰랐네."
빈정거리며, 매몰차게 말하는 두리의 말에 오공은 몸을 떨었다. 몇시간을 밖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왜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어? 너라면, 제일 먼저 나에게 말해줄 주 알았어."
"네 친구가 네가 좋아하는 아이를 좋아하고 있어. 이걸 퍽이나 잘 말해주겠다."
두리의 말에 오공은 슬프게 웃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떴다. 그것을 몇번 반복한 오공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제일 친한 친구의 쌍둥이 형을 좋아했다. 그는 제 다른 친구와 사귄다. 그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편으로는 미안했었다.
오공은 슥슥 제 눈물을 닦았다. 어느새 안개와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하나 보이던 별까지 가리어졌다. 오공은 시간이 너무 늦었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차하나와 똑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걱정 시켜서 미안해, 두리야."
"더 할 말 없어?"
"...조심히 들어가."
오공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표정을 만들어내었다. 눈이 울고 있어 그 모습은 괴기하기 짝이 없었으나 두리는 여의치 않고 오공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쌓아놓고, 그렇게 찔끔 울어서 속이 풀리겠냐? 따라와. 한잔 하자."
***
강이 한눈에 보이는 대도다리 근처에는 포장마차가 여럿있었다. 두리는 그중에서도 사람이 많은 곳을 들어갔다. 오공은 머뭇거리며 두리를 따라 들어갔고 남아있는 자리에 앉았다.
"여기 소주 한병하고 어묵탕이요."
간단하게 주문을 한 두리. 주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네~' 라고 대답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이전에도 주문이 많이 밀려있었는지 큰소리로 지휘하기 시작했다.
간편한 메뉴라 빨리 나온 편인 어묵탕은 맛이 좋았다. 칼칼한 국물에 절로 소주가 생각나서 두리는 병을 탁 친다음 뚜껑을 열었다. 약간 난 기포는 따르자 금세 사라졌다. 잔에 술을 채워 오공에게 건내고 제 잔에도 한 잔 따랐다. 아무런 의미없이 잔을 부딪히고 한꺼번에 넘겼다. 목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다시 어묵탕을 들이켰다.
"크으..."
예전부터 술이 약했던 오공은 한 잔을 쭉 들이키고 쓴소리를 냈다. 마신지 몇초나 되었다고 벌써 얼굴이 새깔개진 오공은 잔을 내려놓고 어묵을 간장에 찍어먹었다. 짭잘함과 감칠맛이 좋았다.
한동안 서로 잔을 주고 받은 둘의 침묵은 오공이 먼저 깨뜨렸다.
"나 정말 바보같지."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두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오공이 실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정말 바보같아, 두리야. 목에 가래가 섞인 오공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긁는듯한 목소리였다. 가래뱉어. 건네준 휴지를 바라보던 오공은 이내 기침을 하더니 침을 뱉어냈다. 고마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여전히 무언가 걸린듯했다.
두리는 마음에 안든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걔가 뭐라고 이렇게 펑펑 우는거냐? 사귀는 것도 아니었잖아."
그 말에 오공이 다시 흐느꼈다. 아, 정말 싫다 독고오공. 두리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소주 한 병을 추가주문 해서 오공의 잔에 따랐다. 그걸 또 원샷하는 오공.
"속버린다. 안주도 먹어."
먹기좋게 가위로 자른 어묵을 그의 접시에 담아주었다. 오공은 훌쩍이며 접시째 들이켰다. 목에 걸려 켁켁 거리는 그에게 물잔을 건냈다.
"차하나가 그렇게 좋냐."
"........"
오공은 대답이 없었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말 가지가지한다. 그 말을 들은 오공은 더욱 침울해져 술잔만 기울였다.
"니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지 그랬어."
타박하는듯한 그의 말에 오공의 고개가 숙여진다. 나도 그러고 싶었어. 모기만한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소음에 쉽게 감춰진다.
두리는 눈을 감듯 낮게 내리깔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하나는 동성애자가 싫다고 하더라..."
난 그게 정말인줄 알았어. 친구로만 남아도 좋으니까. 바라만 봐도 좋으니까... 물론 그 애가 그 말을 했을땐 너무 슬펐어. 많이 울었었는데, 지금은 그냥-
"죽고싶다."
"말 함부로 하지마라."
오공의 말에 두리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무섭잖아, 죽는건. 오공이 입을 오물거렸다. 사실 그것도 생각해봤는데, 하나를 못보는게 더 무서워.
"미치겠다. 너 왜이렇게 찌질해졌냐?"
"몰라.... 그런데 두리야, 더 찌질한게 뭔줄 알아?"
두리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오공의 말을 들어주었다.
두리야, 상 탔을때 웃어주며 축하해준 그 아이를 기억해.
두리야, 아빠랑 싸워서 집나온 나를 위로해주던 그 아이를 기억해.
두리야, 화단에서 물을 주며 꽃을 키우며 웃던 그 아이를 기억해.
두리야, 차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이를 기억해.
"아직도 하나가, 너무 좋아...!"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울먹거린다. 도대체 얼마나 울어야 눈물을 안보이는 걸까. 몇시간째 우는거야. 쟤도 참 대단하다. 두리는 그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제 가슴을 치고 있는 오공의 손을 잡았다.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두리를 바라보았다.
"차하나가 그렇게 좋냐."
아까와 같은 질문.
"너무 좋아해. 말로 다하지 못할 만큼 사랑하고 있어."
아까와는 다른 대답.
다시 한 번 빈 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 두리는 잠시 전화좀 하고 온다며 술을 마시는 오공을 뒤로하고 포장마차 밖으로 나왔다.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딱히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운느낌에 입고 있던 재킷도 벗어 팔에 걸었다.
띡띡. 단조로운 버튼 소리가 들리고 이내 누군가와 연결 됐다. 저와 비슷하지만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 하나였다.
-"차두리. 너 안들어와?"
"나 오늘 밖에서 자고 내일 들어갈거야. 아버지한테 말해줘."
-"뭐? 지금 새벽 두시야 차두리. 도대체 뭐하는데?"
핀잔을 주는 목소리지만 그 안에서 마치 안도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두리는 눈썹을 찡그렸다. 아직도 오공은 안에서 소주를 홀짝이고 있겠지. 두리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오공이 만나고 있어. 좋아하던 애한테 차였대."
-"아, 그래? 그럼 뭐... 그래도 되도록이면 아침엔 들어와."
그 말을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오공을 걱정하는 듯한 투였지만 20여년을 같이 살아온 두리는 그 안에 내포된 뜻을 알았다. 하필 자신이 커플이 된 날에 차이다니, 재수도 없군. 분명 이렇게 생각할것이었다.
휘이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두리는 몸을 떨며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 그 무리에 섞여 혼자 술을 따르는 오공은 작아보였다.
"야, 그만 마시고 가자."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어..."
오공은 그리 말하며 4분의 1즈음 남아있는 소주병을 눈앞에서 흔들었다. 찰랑찰랑, 맑은 소리와 함께 오공의 몸도 흔들린다. 두리는 그의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단숨애 들이켰다. 식도가 타들어가는 느낌에 인상을 쓰고 곧바로물을 들이켰다.
"...두리야?"
"다 마셨어. 이제 가. 너 너무 취했어. 데려다 줄게."
"아직, 더... 윽."
"하, 야. 힘들게 하지말고 걍 기대. 여기 계산이요."
빠르게 계산을 하고 오공을 엎듯이 기대게 하고 택시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공폐차장앞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왔다. 온달이는 졸업여행이라고 했고. 오공이네 아버지는 주무시려나.
"야 독고. 아버지는?"
"....거제도에 잠시 내려가 계셔..."
오공이 땅에 산채 비틀거렸다. 그가 넘어질까싶어 빠르게 그를 잡아 제대로 서개 했다. 오공은 잠시 비틀거리더니 이내 똑바로 섰다. 쌀쌀한 바람에 술기운이 달아나는 듯 했다. 그와 동시에 제가 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도저히 같이 있기 힘들었다.
"고, 고마워 두리야... 내가 다음에, 밥이라도 한 번-"
"독고오공."
"어...?"
두리가 오공의 양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오공이 멍청한 소리를 내자 두리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왜그래, 두리야? 약간 벌게진 얼굴로 제게 물어보는 오공의 얼굴은 퍽이나 색스러웠다.
"차하나를 바라만봐도 좋다며. 그러니까 그냥 바라만 봐. 이제 넌 안돼. 권세모한테, 차하나한테 말할 수 있어?"
"-난...."
"못하겠지. 좋아하는 사람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하는건. 너무 미화했나? 그걸 말함으로서 네게서 더 멀어질 차하나가 무서운거겠지. 그러면 이제 바라보지도 못할테니까."
푹푹. 두리의 말이 비수처럼 날카롭게 심장에 찔린 것 같았다. 그것이 옥죄여와 숨이 다 가파왔다. 오공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시선을 바닥으로 두었다. 제 속을 꿰뚫어보는 두리를 바라 볼 자신이 없었다. 두리는 그런 오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를 보는 것 만으로도 좋다며, 오공아."
두리의 목소리가 한껏 부드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압박을 주는듯한 느낌. 두리는 바닥을 뚫어지게 보고있는 오공의 얼굴을 붙잡아 올려 저와 눈을 마주쳤다. 깊은 검은색 눈동자에 얼굴이 비췄다.
"나는 어때?"
두리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것과 상반되게 오공의 얼굴이 이상한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눈을 피하려 두리를 밀쳐내려 했지만 알코올 때문에 몸이 제대로 가누어지지 못해 그것도 하지 못했다.
"헤어만 다르고, 얼굴은 똑같잖아? 뭣하면, 머리라도 기를까?"
"아냐. 이건 아니야, 두리야."
"왜? 넌 어차피 차하나 못잊지 않아? 내가 걔 역할 대신 해주겠다고. 나랑 차하나 21년동안 같이 살았어. 흉내 내는거 어렵지 않아."
"...두리야..."
제 이름만 계속 부르제끼는 오공에, 두리는 인상을 썼다. 오공의 탁한 눈에는 눈물과, 애환과, 절망, 기대가 품어져있었다. 어쩔래, 독고오공? 어차피 선택지는 하나야. 넌 그걸 고를거고.
"나에겐, 하나뿐이야. 하나 말고 다른 사람을 둘 여유가 없어."
"너 정말 바보같다, 오공아."
조금 더 높아진 두리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마치 하나와 같아 오공이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본 두리의 입가가 올라가고 눈가가 접어진다. 하나의 표정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 같은 얼굴에, 오공은 저도 모르개 마른침을 삼켰다.
이마의 절반을 덮은 짧은 앞머리와 깔끔하게 정리한 눈썹,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는 저절로 차하나를 떠오르게 했다. 그 모습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볼에 닿는 약간 까슬한 감촉에 다시 눈을 떴다. 두리의 목이 보였다. 약간 짠 땀냄새가 났다.
"...차두리 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독고오공. 한번 사겨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깨지면 되잖아? 우린 더이상 애가 아냐. 누군가의 시선을, 참견을 받을 필요도 없어."
"이건, 아니야. 두리야. 집에가서. 더 잘 생각해봐"
두리는 아무 말 없이 오공으늘 노려보듯하였다. 그 살벌한 기세에 오공은 주눅이 들었지만 그래도 당당히 어깨를 폈다. 달빛을 받아 서슬하게 빛난 두리의 눈은 금새 바뀌었다. 초승달같이 눈을 휘며 접어 웃은 두리는 오공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힘을 꽉 주어 목덜미애 얼굴을 묻어 혈관을 살짝 깨물었다.
"윽, 이게 무슨짓이야!"
"......"
"정신차려 차두...리...! 윽, 하지마!"
발버둥을 쳐보려하도 이미 술에 절은 몸이 움직이는걸 거부했다. 떠한 계속되는 자극에 오공의 머리는 약간 하얘졌다. 그러다가 또 디잉- 머리가 울리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 티 목 부분을 아래로내려 쇄골까지 깨문다.
"하윽... 잠시, 잠시만."
오공이 애원하듯이 빌자 두리는 그제서야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천천히 오공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 안에 담긴 욕망과 두려움은 두리의 것과 같아 그는 진득하게 웃었다.
"흥분되지 않아? 차하나랑 똑같은 얼굴로 이렇게 하니..."
오공은 손을 뒤로해 제 휴대폰을 찾았다. 없다. 항상 뒷주머니애 꽂고 다니는게, 지금은 없다. 다시보니 두리의 왼쪽 가슴주머니에 있었다. 휴대폰을 찾는 오공을 눈치 챈 두리는 휴대폰을 꺼내 흔들다가 뒤로 던져버렸다.
"오공아...."
"......"
눈을 아래로 뜨고, 손을 가지런히 한다. 아까보다 부드러워진 목소리는 분명 차하나의 것이었다.
"나랑 자자."
오공은 무언가에 홀린듯이 두리의 어깨를 잡아 끌어안았고, 이유모를 눈물을 흘렸다. 니가 왜울어 독고오공. 뭘 잘했다고 울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공은 쉽사리 눈물을 훔칠 수 없었다. 제 욕심에 의해 친구를 잃는다. 그 친구는 제게 이성이라는 의미로 새롭게 다가와 손를 내민다.
오공은 그 손을 잡았다.
"나랑 세모, 사귀기로 했어."
두리는 하나의 말에 별 미동이 없었다.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말을 꺼내는 하나를 바라보았다. 하나는 그런 두리의 반응에 재미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바라봤다. 세모에게서 온 쪼꼬톡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저울질 하더니 결국 권세모냐?"
쪼꼬, 쪼꼬, 쪼꼬톡.
"그게 무슨말이야."
두리의 말과 함께 울려퍼진 쪼꼬톡 알림음에 하나가 다시 물었다. 그런 모습에 두리는 한숨을 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금 들어온 하나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두리는 그런 하나에게 다가가 셔츠깃을 완전 풀어헤쳤다.
"차두리, 이게 무슨짓이야!"
갑작스런 두리의 행동에 하나는 얼굴이 시뻘게진채로 소리쳤다. 바로 앞에서 소리 치는게 시끄럽지도 않은지 얼굴의 표정 변화 없이 목선에서 가슴부근까지 훑어본 두리는 무덤덤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했네."
그게 무슨 뜻인지 단숨에 파악한 하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게졌다. 도운이 자고 있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내면 깰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하나는 조용히 숨죽여 말했다.
"사귀는 사이, 그것도 성인인데 못할 이유가 뭐니?"
"그래, 그렇겠지. 좋았냐? 니가 깔리는거지?"
"뭐? 넌 말을 해도-"
"네 말처럼 성인인데 이런말도 못해?"
억양없이 단조로운 말투. 평소와는 다른 두리의 모습에 당황한건 하나였다. 자신이 짜증을 내어도 항상 웃으며 맞받아치던 두리가 오늘따라 조용했고 진지했으며 침착했다.
하나는 그런 두리를 애써 모른척하며 옷을 여몄다. 그의 흔적을 다른이, 그것도 쌍둥이 동생에게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웠다.
두리는 그런 하나를 보다가 자켓을 집어들고 방을 나섰다. 뒤에서 하나가 어디가냐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물어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라 가죽자켓을 입은 두리는 차고로 가려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10년을 넘게 자신과 함께한 Y의 인공지능은 무서울정도로 두리를 잘 꿰차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직 12시가 되지 않은 대도시는 여전히 많은 네온사인이 번쩍거렸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그는 시선을 돌려 화려한 불빛과는 떨어진 거리로 걸어갔다. 대도시 중에서도 인적이 드문 공간, 황량하게 세워져 있는 오공폐차장이 보였다. 두리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불빛 하나 없는 곳, 두리는 담을 타고 넘어가 급하게 한 사람을 찾았다.
타이어가 쌓여 있는 곳 위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오공이 있었다. 두리는 그 모습에 발걸음을 빨리하여 그에게 다가갔다. 탁탁, 뛰는 소리가 남에도 오공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여기서 뭐해."
오공은 대답이 없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오공의 시선 끝에는 안개가 끼어있는 하늘에 유독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었다.
"독고오공."
두번의 부름. 그럼에도 오공은 대답이 없다. 그는 마치 넋이 나간것처럼 멍하니 앉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리는 그를 보다가 이내 바닥에 널부러진 휴대폰을 주었다. 화면을 켜자 쪼꼬톡이 보였다. 발신자는 권세모였다.
[나 이제 그 애랑 사귀기로 함^^ 조언 고맙다. 나중에 밥 한끼 살게.]
[사실 하나랑 사귀기로 했어. 너한테 제일 먼저 말고 싶더라. 축하해줘.]
그가 쪼꼬톡을 보낸 시간은 20시 정도 였다. 독고오공 성격에 저 메시지를 보자마자 저상태로 계속 있었을게 뻔했다. 두리는 휴대폰 화면을 끄고 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아직도 멍하게 있는 오공을 깨울 방법. 충격 요법에 남의 사생활이지만, 저대로 가다간 그대로 석상이 될 것만 같았다.
"차하나랑 권세모, 어디까지 갔는줄 아냐?"
"......"
"걔 몸에 자국 많이 남겼더라."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마음 아팠다. 자국이 남겨지는 과정들.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그게 무엇인지 충분히 아는 나이였다.
오공의 고개가 서서히 돌려졌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탁한 눈동자에 서서히 눈물이 맺혀 방울방울 떨어졌다. 두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은 금세 가득 차올라 폭포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내 조금씩 흐느끼는 소리가 커지고, 그는 한참을 울었다. 두리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오공이 지쳐 울음이 그칠 때 즈음, 두리는 오공의 앞에 섰다.
"정말 웃기지. 연애 상담을 도와주던 친구가 짝사랑 하던 애랑 사귀고, 자고."
"두리야...."
드디어 오공의 입이 열렸다.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목소리는 이미 모두 갈라져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공은 아직도 눈물을 모두 쏟아내지 않았는지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말했다.
"난 세모가 좋아하는 애가, 하나인줄 몰랐어."
"그랬겠지. 넌 차하나 말고는 관심 없었으니까. 다 아는걸 너만 몰랐네."
빈정거리며, 매몰차게 말하는 두리의 말에 오공은 몸을 떨었다. 몇시간을 밖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왜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어? 너라면, 제일 먼저 나에게 말해줄 주 알았어."
"네 친구가 네가 좋아하는 아이를 좋아하고 있어. 이걸 퍽이나 잘 말해주겠다."
두리의 말에 오공은 슬프게 웃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떴다. 그것을 몇번 반복한 오공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제일 친한 친구의 쌍둥이 형을 좋아했다. 그는 제 다른 친구와 사귄다. 그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편으로는 미안했었다.
오공은 슥슥 제 눈물을 닦았다. 어느새 안개와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하나 보이던 별까지 가리어졌다. 오공은 시간이 너무 늦었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차하나와 똑같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걱정 시켜서 미안해, 두리야."
"더 할 말 없어?"
"...조심히 들어가."
오공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표정을 만들어내었다. 눈이 울고 있어 그 모습은 괴기하기 짝이 없었으나 두리는 여의치 않고 오공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쌓아놓고, 그렇게 찔끔 울어서 속이 풀리겠냐? 따라와. 한잔 하자."
***
강이 한눈에 보이는 대도다리 근처에는 포장마차가 여럿있었다. 두리는 그중에서도 사람이 많은 곳을 들어갔다. 오공은 머뭇거리며 두리를 따라 들어갔고 남아있는 자리에 앉았다.
"여기 소주 한병하고 어묵탕이요."
간단하게 주문을 한 두리. 주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네~' 라고 대답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이전에도 주문이 많이 밀려있었는지 큰소리로 지휘하기 시작했다.
간편한 메뉴라 빨리 나온 편인 어묵탕은 맛이 좋았다. 칼칼한 국물에 절로 소주가 생각나서 두리는 병을 탁 친다음 뚜껑을 열었다. 약간 난 기포는 따르자 금세 사라졌다. 잔에 술을 채워 오공에게 건내고 제 잔에도 한 잔 따랐다. 아무런 의미없이 잔을 부딪히고 한꺼번에 넘겼다. 목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다시 어묵탕을 들이켰다.
"크으..."
예전부터 술이 약했던 오공은 한 잔을 쭉 들이키고 쓴소리를 냈다. 마신지 몇초나 되었다고 벌써 얼굴이 새깔개진 오공은 잔을 내려놓고 어묵을 간장에 찍어먹었다. 짭잘함과 감칠맛이 좋았다.
한동안 서로 잔을 주고 받은 둘의 침묵은 오공이 먼저 깨뜨렸다.
"나 정말 바보같지."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두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오공이 실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정말 바보같아, 두리야. 목에 가래가 섞인 오공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긁는듯한 목소리였다. 가래뱉어. 건네준 휴지를 바라보던 오공은 이내 기침을 하더니 침을 뱉어냈다. 고마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여전히 무언가 걸린듯했다.
두리는 마음에 안든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걔가 뭐라고 이렇게 펑펑 우는거냐? 사귀는 것도 아니었잖아."
그 말에 오공이 다시 흐느꼈다. 아, 정말 싫다 독고오공. 두리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소주 한 병을 추가주문 해서 오공의 잔에 따랐다. 그걸 또 원샷하는 오공.
"속버린다. 안주도 먹어."
먹기좋게 가위로 자른 어묵을 그의 접시에 담아주었다. 오공은 훌쩍이며 접시째 들이켰다. 목에 걸려 켁켁 거리는 그에게 물잔을 건냈다.
"차하나가 그렇게 좋냐."
"........"
오공은 대답이 없었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정말 가지가지한다. 그 말을 들은 오공은 더욱 침울해져 술잔만 기울였다.
"니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지 그랬어."
타박하는듯한 그의 말에 오공의 고개가 숙여진다. 나도 그러고 싶었어. 모기만한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소음에 쉽게 감춰진다.
두리는 눈을 감듯 낮게 내리깔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하나는 동성애자가 싫다고 하더라..."
난 그게 정말인줄 알았어. 친구로만 남아도 좋으니까. 바라만 봐도 좋으니까... 물론 그 애가 그 말을 했을땐 너무 슬펐어. 많이 울었었는데, 지금은 그냥-
"죽고싶다."
"말 함부로 하지마라."
오공의 말에 두리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무섭잖아, 죽는건. 오공이 입을 오물거렸다. 사실 그것도 생각해봤는데, 하나를 못보는게 더 무서워.
"미치겠다. 너 왜이렇게 찌질해졌냐?"
"몰라.... 그런데 두리야, 더 찌질한게 뭔줄 알아?"
두리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오공의 말을 들어주었다.
두리야, 상 탔을때 웃어주며 축하해준 그 아이를 기억해.
두리야, 아빠랑 싸워서 집나온 나를 위로해주던 그 아이를 기억해.
두리야, 화단에서 물을 주며 꽃을 키우며 웃던 그 아이를 기억해.
두리야, 차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이를 기억해.
"아직도 하나가, 너무 좋아...!"
왼쪽 가슴을 두드리며 울먹거린다. 도대체 얼마나 울어야 눈물을 안보이는 걸까. 몇시간째 우는거야. 쟤도 참 대단하다. 두리는 그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제 가슴을 치고 있는 오공의 손을 잡았다.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두리를 바라보았다.
"차하나가 그렇게 좋냐."
아까와 같은 질문.
"너무 좋아해. 말로 다하지 못할 만큼 사랑하고 있어."
아까와는 다른 대답.
다시 한 번 빈 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 두리는 잠시 전화좀 하고 온다며 술을 마시는 오공을 뒤로하고 포장마차 밖으로 나왔다.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딱히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운느낌에 입고 있던 재킷도 벗어 팔에 걸었다.
띡띡. 단조로운 버튼 소리가 들리고 이내 누군가와 연결 됐다. 저와 비슷하지만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 하나였다.
-"차두리. 너 안들어와?"
"나 오늘 밖에서 자고 내일 들어갈거야. 아버지한테 말해줘."
-"뭐? 지금 새벽 두시야 차두리. 도대체 뭐하는데?"
핀잔을 주는 목소리지만 그 안에서 마치 안도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두리는 눈썹을 찡그렸다. 아직도 오공은 안에서 소주를 홀짝이고 있겠지. 두리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오공이 만나고 있어. 좋아하던 애한테 차였대."
-"아, 그래? 그럼 뭐... 그래도 되도록이면 아침엔 들어와."
그 말을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오공을 걱정하는 듯한 투였지만 20여년을 같이 살아온 두리는 그 안에 내포된 뜻을 알았다. 하필 자신이 커플이 된 날에 차이다니, 재수도 없군. 분명 이렇게 생각할것이었다.
휘이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두리는 몸을 떨며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 그 무리에 섞여 혼자 술을 따르는 오공은 작아보였다.
"야, 그만 마시고 가자."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어..."
오공은 그리 말하며 4분의 1즈음 남아있는 소주병을 눈앞에서 흔들었다. 찰랑찰랑, 맑은 소리와 함께 오공의 몸도 흔들린다. 두리는 그의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단숨애 들이켰다. 식도가 타들어가는 느낌에 인상을 쓰고 곧바로물을 들이켰다.
"...두리야?"
"다 마셨어. 이제 가. 너 너무 취했어. 데려다 줄게."
"아직, 더... 윽."
"하, 야. 힘들게 하지말고 걍 기대. 여기 계산이요."
빠르게 계산을 하고 오공을 엎듯이 기대게 하고 택시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공폐차장앞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왔다. 온달이는 졸업여행이라고 했고. 오공이네 아버지는 주무시려나.
"야 독고. 아버지는?"
"....거제도에 잠시 내려가 계셔..."
오공이 땅에 산채 비틀거렸다. 그가 넘어질까싶어 빠르게 그를 잡아 제대로 서개 했다. 오공은 잠시 비틀거리더니 이내 똑바로 섰다. 쌀쌀한 바람에 술기운이 달아나는 듯 했다. 그와 동시에 제가 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도저히 같이 있기 힘들었다.
"고, 고마워 두리야... 내가 다음에, 밥이라도 한 번-"
"독고오공."
"어...?"
두리가 오공의 양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오공이 멍청한 소리를 내자 두리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왜그래, 두리야? 약간 벌게진 얼굴로 제게 물어보는 오공의 얼굴은 퍽이나 색스러웠다.
"차하나를 바라만봐도 좋다며. 그러니까 그냥 바라만 봐. 이제 넌 안돼. 권세모한테, 차하나한테 말할 수 있어?"
"-난...."
"못하겠지. 좋아하는 사람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하는건. 너무 미화했나? 그걸 말함으로서 네게서 더 멀어질 차하나가 무서운거겠지. 그러면 이제 바라보지도 못할테니까."
푹푹. 두리의 말이 비수처럼 날카롭게 심장에 찔린 것 같았다. 그것이 옥죄여와 숨이 다 가파왔다. 오공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시선을 바닥으로 두었다. 제 속을 꿰뚫어보는 두리를 바라 볼 자신이 없었다. 두리는 그런 오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를 보는 것 만으로도 좋다며, 오공아."
두리의 목소리가 한껏 부드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압박을 주는듯한 느낌. 두리는 바닥을 뚫어지게 보고있는 오공의 얼굴을 붙잡아 올려 저와 눈을 마주쳤다. 깊은 검은색 눈동자에 얼굴이 비췄다.
"나는 어때?"
두리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것과 상반되게 오공의 얼굴이 이상한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눈을 피하려 두리를 밀쳐내려 했지만 알코올 때문에 몸이 제대로 가누어지지 못해 그것도 하지 못했다.
"헤어만 다르고, 얼굴은 똑같잖아? 뭣하면, 머리라도 기를까?"
"아냐. 이건 아니야, 두리야."
"왜? 넌 어차피 차하나 못잊지 않아? 내가 걔 역할 대신 해주겠다고. 나랑 차하나 21년동안 같이 살았어. 흉내 내는거 어렵지 않아."
"...두리야..."
제 이름만 계속 부르제끼는 오공에, 두리는 인상을 썼다. 오공의 탁한 눈에는 눈물과, 애환과, 절망, 기대가 품어져있었다. 어쩔래, 독고오공? 어차피 선택지는 하나야. 넌 그걸 고를거고.
"나에겐, 하나뿐이야. 하나 말고 다른 사람을 둘 여유가 없어."
"너 정말 바보같다, 오공아."
조금 더 높아진 두리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마치 하나와 같아 오공이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본 두리의 입가가 올라가고 눈가가 접어진다. 하나의 표정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 같은 얼굴에, 오공은 저도 모르개 마른침을 삼켰다.
이마의 절반을 덮은 짧은 앞머리와 깔끔하게 정리한 눈썹,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는 저절로 차하나를 떠오르게 했다. 그 모습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볼에 닿는 약간 까슬한 감촉에 다시 눈을 떴다. 두리의 목이 보였다. 약간 짠 땀냄새가 났다.
"...차두리 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독고오공. 한번 사겨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깨지면 되잖아? 우린 더이상 애가 아냐. 누군가의 시선을, 참견을 받을 필요도 없어."
"이건, 아니야. 두리야. 집에가서. 더 잘 생각해봐"
두리는 아무 말 없이 오공으늘 노려보듯하였다. 그 살벌한 기세에 오공은 주눅이 들었지만 그래도 당당히 어깨를 폈다. 달빛을 받아 서슬하게 빛난 두리의 눈은 금새 바뀌었다. 초승달같이 눈을 휘며 접어 웃은 두리는 오공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힘을 꽉 주어 목덜미애 얼굴을 묻어 혈관을 살짝 깨물었다.
"윽, 이게 무슨짓이야!"
"......"
"정신차려 차두...리...! 윽, 하지마!"
발버둥을 쳐보려하도 이미 술에 절은 몸이 움직이는걸 거부했다. 떠한 계속되는 자극에 오공의 머리는 약간 하얘졌다. 그러다가 또 디잉- 머리가 울리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 티 목 부분을 아래로내려 쇄골까지 깨문다.
"하윽... 잠시, 잠시만."
오공이 애원하듯이 빌자 두리는 그제서야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천천히 오공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 안에 담긴 욕망과 두려움은 두리의 것과 같아 그는 진득하게 웃었다.
"흥분되지 않아? 차하나랑 똑같은 얼굴로 이렇게 하니..."
오공은 손을 뒤로해 제 휴대폰을 찾았다. 없다. 항상 뒷주머니애 꽂고 다니는게, 지금은 없다. 다시보니 두리의 왼쪽 가슴주머니에 있었다. 휴대폰을 찾는 오공을 눈치 챈 두리는 휴대폰을 꺼내 흔들다가 뒤로 던져버렸다.
"오공아...."
"......"
눈을 아래로 뜨고, 손을 가지런히 한다. 아까보다 부드러워진 목소리는 분명 차하나의 것이었다.
"나랑 자자."
오공은 무언가에 홀린듯이 두리의 어깨를 잡아 끌어안았고, 이유모를 눈물을 흘렸다. 니가 왜울어 독고오공. 뭘 잘했다고 울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오공은 쉽사리 눈물을 훔칠 수 없었다. 제 욕심에 의해 친구를 잃는다. 그 친구는 제게 이성이라는 의미로 새롭게 다가와 손를 내민다.
오공은 그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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