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가고 무더운 폭염때문에 잠들지도 못하는 밤이었다. 안젤라는 짜증스레 휴대폰 화면을 키며 시계를 확인했다. 겨우 22시 9분. 잠들기에는 이른시간이지만 철야를 추가근무를 넘어 철야까지 뛴 안젤라로서는  잠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에어컨 리모컨을 보며 켤까, 말까 고민하던 그녀는 이불 구석으로 리모컨을 던져버리고 일어나 얇은 집업 하나를 걸쳤다. 내일도 휴무이고, 낮에 잠을 잤으니 산책로라도 한 번 뛰고 오면 피곤해서 더 잠이 잘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휴대폰만 챙기고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맷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바람이 불고 그로 인해 불쾌지수는 높아져만 갔기에 안젤라의 표정은 필 수가 없었다.

 

탁탁탁탁.

 

바닥을 울리며 뛰는 소리가 경쾌하기 그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바람에 식히니 몸이 시원해졌다. 속도를 줄이며 걸으니 다시 온몸의 열기가 후끈하게 올라온다.

 

안젤라는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두러보았다. 집에가서 샤워를 하는건 둘째 문제 치고, 당장 타들어가는 목을 식힐만한게 필요했다.

 

가까이 보이는 BR31에 화색을 띈 안젤라는 당당히 가게에 입성했고, 아이스크림을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달콤한 초콜릿? 아니, 초콜릿은 칼로리가 높으니까... 상큼한 딸기? 톡톡 터지는 슈팅스타?

 

여러종류의 아이스크림에 안젤라는 잠시 고민하다 파인트 사이즈에 3가지 맛을 고르기로 했다. 선택지가 3가지로 늘어나니 그것도 고민이다. 열심히 맛과 칼로리를 비교해가며 고르고 있을때 딸랑이는 종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은 관심밖이었다.

 


"파인트로 체리쥬빌레,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사랑에 빠진 딸기요."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네. 나도 이 결정장애좀 없애야할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보던것을 말고 허리를 폈다. 나도 그냥 상큼하게 저렇게 시켜야지.

 


"사랑에 빠진 딸기,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체리쥬빌레로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손님, 계산하시겠어요?"

 


먼저 주문한 사람이 계산 후 다음 사람것을 계산한다. 밤이라 근무 인원도 1명. 안젤라는 짧게 대답하며 의자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만끽했다.

 


"이런..."

 

"저, 손님. 무슨 문제가?"

 

"...휴대폰 전원이 꺼져서."

 


하긴, 요즘 누가 카드를 들고다녀. 안젤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득 목소리가 참 허스키하다고 생각했다. 목이 마르긴 엄청 마른가보네. 여자는 난처한 목소리로 휴대폰 충전기가 있냐 물어보는 말에 직원은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깊은 한숨소리와 함께 뒤돌았다.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팬츠를 입은 모습은 깔끔했다. 안젤라는 무의식적으로 여자의 얼굴을 올려봤다.

 


"헙."

 

"응?"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헉소리가 나왔다. 안젤라는 다급히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만지는척 했지만 이미 그녀의 시선이 닿은 후였다.

 


"저기...혹시 봉-"

 

"저 그런사람 아닙니다."

 


안젤라, 이 멍청이!
안젤라는 제자신을 자책하며 휴대폰에 이마를 박았다. 이미 저를 보른 그녀도 알아차렸다. 그녀는 더이상 모른척 해봤자 소용 없다는것을 깨닫고는 살며시 얼굴을 들었다. 새하얀 얼굴에 차가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무테안경. 안쪽으로 만 머리카락.

 


"맞네, 봉금자!"

 

"아, 하하. 안녕하세요... 소라선배."

 


저 조그마한 입에서 터져나오는 자신의 본명. 그러지 않은척 하지만 저 직원, 분명 웃었다. 그래서 고개 숙이고 있잖아. 안젤라는 제 고등학생 시절 선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숨기고 싶은 과거를 아는 사람 중 한명.

 


"오랜만이네. 많이 변했는걸?"

 

"아, 하하. 그렇죠, 뭐."

 


그래, 많이 변했다. 이 변화를 위해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대학 재학중 울며겨쟈먹기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공대에 귀한 여학생이어도 망할 외모지상주의는 미팅자리에 끼지도 못하게했다.

 


"그나저나 나랑 같은 맛이던데..."

 


금자... 아니, 안젤라는 소라의 말을 듣고 짐작했다. 오늘도 내 지갑이 무사하긴 글렀군. 많이 먹을것도 아니니, 하나만 사서 갈라먹자고 하면 될 듯 하다.

 


"제거 같이, 드실래요?"

 

"정말? 고마워."

 


당연히 그냥 하는말이잖아요. 젠장할, 젠장할.
안젤라는 속으로 한탄하며 제가 계산했다. 직원의 얼굴을 보니 불그스럼한게, 속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게 뻔했다.

 


"여기서 먹을래요? 아니면 밖에서?"

 

"내 차에 가서 먹자."

 

"차 끌고 왔어요?"

 

"아, 지금 퇴근중."

 


안젤라는 그 말에 시간을 확인했다. 22시 50분. 그리고 소라의 얼굴을 보니 땀이 범벅인걸 볼 수 있었다. 안젤라는 그녀의 말을 밖으로 나가면서도 몇년만에 보는, 그것도 친하지도 않았던 선후배 사이인데 꽤 오랜 인연을 만나는 듯한 소라의 행동에 의심이 들었다. ...설마, 장기밀매조직인건 아니겠지?

 

잘은 모르지만, 학창 시절때 개인 기사까지 부리던 소라였으니 그건 아니라 굳게 믿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선배 차는 어디있어요?"

 

"응? 여기 있잖아."

 

"헐."

 


안젤라는 순간 딸꾹질이 나오려는걸 참았다. 긴 몸체와 세련된 코팅, 감각적인 디자인. 시가 10억에 달하는 자동차를 직접 눈으로 본 안젤라는 입이 안떨어졌다.

 


"차가 좀 작지? 간단하게 출퇴근용이라서. 조금 부끄럽네."

 


작아? 작아? 이게? 4인용이긴 하지만 안쪽 공간이 충분하고, 소파 부분을 뉘일수 있어서 여러명이 앉아서 가기도 좋고, 차 안에서 편히 잘 수도 있다. 그 외에 소형 냉장고라던가, 빵빵한 음향지원이라든가는 기본옵션이고.

 


"하, 하하. 음... 성공하셨네요."

 

"글쎄. 요즘 넌 뭐해?"

 

"전 그냥, BM 연구진으로 있어요."

 

"아, 권리모가 회장인 거기?"

 

"아, 알아요?"

 

"알다마다."

 


아이스크림 뚜껑을 연 소라는 한숟갈 듬뿍 떠서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멍히 보다 안젤라도 한 입 먹었다. 시원하고 상큼한 느낌이 입안에 퍼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한입. 아, 체리 씹혔어. 기분좋아. 안젤라는 한입씩 과육을 즐기며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소라의 차는 시원했고, 조용했다.

 


"요즘 그녀석 때문에 얼마나 골치인지."

 

"아, 그래요?"

 

"아, 여기 연구진이 있으니 물어보면 되겠네. 혹시 권리모 걔-"

 

"아아아안돼죠 선배. 하하. 잘 아시는 분이... 아, 그나저나 선배는 직장이 어디에요?"

 


소라의 급작스러운 질문이 다가오기전에 애써 화제를 돌렸다. 소라도 그냥 한 번 해본말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제가 근무하는 곳에 말했다.

 


"아, W그룹 사장이야."

 

"아, 그렇군요. W그룹... .....네?!"

 

"몰랐어?"

 

"그,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다른 애들은 다 알던데."

 


그러고 보니, 20년 정도 된 기억 속 저편에 항상 왕소라가 지나갈 때면 무슨 기업이, 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딱히 친구가 없던 안젤라 였던지라 그녀만 몰랐던 것이었다.

 


"그래서- 권리모가 잘해줘?"

 

"네? 아, 네..."

 


잘해주나? 고등학교, 대학교 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을 졸업 후 권리모와 그의 친구 차도운은 우수한 성적으로 연구소에 스카웃 됐었다는 것 까지는 안다. 그녀도 가고싶어 했던 연구소였으니.

 

뉴스 전체를 휩쓸었던 화재 사건이 있던 후 소식이 끊겼다가, 제가 연구소에서 나와 다른 구직자리를 알아 볼 때에 연락이 닿았던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 리모는 안젤라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너 꽤, 경력이 괜찮더라? 우리 회사 올래?"

 

"네?"

 


안젤라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소라를 쳐다보았다. 분홍색 스푼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약간 어색해보였지만,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한건지 자각을 못하는 듯 소라는 아주 태평하게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었다.

 


"지금 그거, 농담이시죠?"

 

"내가 너한테 농담을 해서 뭐하겠니."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제 경력은 어떻게 아신거에요?"

 

"말 한마디면 모든 정보가 나한테 넘어오는데, 뭘."

 


아, 이 선배.. W그룹 사장이라고 했었지.


원체 학창 시절에 안면만 아는 사이여서 그런가, 안젤라는 소라가 매우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 보통 십수년 만에 만나면 이렇게 차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퍼먹진 않겠지.

 


"급여는 지금 다니는 회사의 두배면 되나?"

 

"할게요."

 


아, 순간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와버렸다.
안젤라는 제가 말을 뱉고도 급히 입을 막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소라는 그녀를 보며 의미모를 미소를 지었다.

 


"하, 하하. 그러니까 제 말은-"

 

"기다려주지, 뭐. 한달이면 되나?"

 

"...진심이세요?"

 

"방금도 말했는데, 난 농담따먹기를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아니, 그게 아니라."

 


햇수로 따지자면 20년이다. 그녀가 졸업을 하고 나서는 따로 연락이 닿았던 적이 없다. 동창회같은것도 나오지 않았고, 연락처도 바뀌고, 심지어 리모를 통해 유학을 갔다는 소리를 들었을땐 자시만 조금 친했던 사이라고 착각한거라며 끝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하잖아.'

 


사실 이게 회사 차고, 그녀가 불법 조직같은 곳에 다닌다면, 자신의 인생은 그대로 아웃 아닌가? 그리고 BM모터스 같은 경우는 저와 리모가 장난쳐놓은 기능도 있었다. 만약 그것을 버린다면-

 


"이건 내 명함이야. 대외에는 전문 경영인을 세워놓으니 니가 당연히 모를수도 있겠네. 뭐, 강요는 아니니까 가볍게 생각해."

 


그러니까, 당신이라면 이걸 가볍게 여길 수 있냐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안젤라는 차마 그것을 뱉을수가 없었다. 대신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스푼 떠서 그대로 입에 집어넣었다. 대놓고 욕심을 보이는 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스스로가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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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 전력 100분 72회 주제 아이스크림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아무리도 2편이나 3편이 나올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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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mo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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