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봇뽕이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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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가 데려다 준다는 것을 거절하고, 달려서 집까지 갔던 안젤라는 두근거리는 제 심장소리에 미칠것만 같았다. 제빠르게 샤워기를 틀어 몸을 적셨지만 열기가 가실줄 몰랐다. 제발,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거에요.

 

안젤라는 애꿎은 제 입술을 깨물며 소라의 말을 되뇌었다. 간단히 저를 칭찬하는 말들과, 어색하게 떠보는 말. 그녀 특유의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한...달..."

 

 

그녀는, 자신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준다고 했다. 안젤라는 그 안에 내포되어있는 뜻을 깨닫기 위해 여러 방향에서 접근해서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제게 스카우트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룽모터스, 6년만에 전국, 그리고 해외까지 진출한 거대 자동차 기업. 그녀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보면, 분명히 그녀는 그 기술을 욕심내고 있었다.

 

안젤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두 배의 월급. 대략 이야기 해주었던 근무환경은 연구자라면 누구든지 끌리는 조건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열악한 환경의 연구원부터 몇 년을 주기로 바꾸다. 하지만 스카우트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문에 더 망설여졌다.

 

더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픈 일이었기에 안젤라는 애써 그 말을 털어내려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녀는 없지만, 기억 속 그녀는 무테 안경 속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훑었었다. 마치 맛있는 먹잇감이라도 되는 마냥.

 


***

 


안젤라는 골치아픈 표정으로 결재서류를 보고 있었다. 부품 자체가 억단위가 넘어가다 보니 어느정도의 조율이 필요하단 것을 알지만 정말 줄이고, 줄여서 이만큼인데 권리모는 더 줄여오란다.

 

그것때문에 야근에 이어 철야, 밤샘까지 하기를 몇날 며칠, 아주 조금 더 줄일 수 있었고 파일을 가지런히 하여 제 책상 위에 놔뒀다.

 

 

"안젤라, 끝나고 시간 있어?"


"아, 지원언니. 왜요?"

 

 

유지원. 38살의 연구소장이다. 어깨까지 오는 긴 밝은 갈색 단발머리에 따뜻한 헤이즐 빛 눈동자가 매력적인 여자였다.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 않고, 제가 처음 입사했던 연구소의 선임이라 친한 사이였고, 우연찮게 BM에서 만나 언니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퇴근 후 오랜만에 술 한잔 어때?"


"음, 그럴까요? 그렇다면 전 이 망할 결재를 통과시키고 올게요."


"하하, 내가 갈까?"


"아뇨, 뭐. 제가 갈거에요. 할 말도 있고요."

 

 

소라를 만났던 날로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안젤라는 수도 없이 고민에 고민을 하다 마무리를 하고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계약서 상으로 '그 기술'에 대한 것은 비밀로 붙이기로 했고 자신은 그것을 지킬 자신이었다.

 

안젤라는 파일을 들고 회장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시간이 매우 느리다고 생각 할때즘, 도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똑똑.

 

노크를 하자 들어와, 라는 짧은 대답을 듣고 문을 여니 반짝이는 은발을 자랑하는 리모가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게 보였다. 뉴스에서는 어제 밤에 일어난 자동차 제어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화면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차체 아래에는 '버그벅'이라는 것이 운전자의 제어권을 빼앗아 사고로 치닿게 하는 무서운 물건이다.

 

 

"여기 이번 예산안입니다."


"어어, 놔둬."

 

 

리모는 한동안 뉴스를 보다가, 이내 크게 웃으며 tv를 종료했다. 의자를 돌려 안젤라를 바라보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가져온 예산 결재 서류를 들었다. 억대가 넘어가는 금액에 리모의 미간이 살짝 패였다.

 

 

"이거랑 이거는 없어도 되는거 아냐?"


"회장님께서 안전한 차를 만들라고 하셨잖습니까?"


"안젤라, 아는 사람끼리 왜이래? 이게 없어도 충분히 안전한 차를 만들 수 있어."

 

 

단, 나 리모가 허락할때만.

 

낮게 읊조리는 그 목소리에 안젤라는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과거는 알고 있다. 화재로 가족을 잃은 것도, 친구와 연락이 끊긴 것도, 그가 최초로 만든 인공지능 자동차를 잃은것도.

 

리모는 안젤라와 비밀리에 또봇 제로를 다시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중이다. 이것은 리모의 과거를 알고 있는 안젤라만 데리고 하는 연구였고, 당연히 연구소장인 유지원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안젤라는 다른 직원들보다 야근, 철야 횟수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또봇 제로도 이제 완성단계. 리모의 최종 승인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실험을 해볼 수 있지만 리모는 무엇때문인지 아직까지 승인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장님."


"뭐지?"


"여기 있습니다."

 

 

안젤라는 제 가운 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리모에게 공손히 전했다. 봉투 중앙에 사직서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본 리보의 눈꼬리가 홱 올라갔다.

 

 

"안돼."

 

 

이유도 묻지 않고 고개를 젓는 리모. 사직서가 그의 손 안에서 처참하게 찢겨졌다. 안젤라는 그런 것을 예상했는지 어깨를 으슥이며 품 안에서 또다른 사직서를 꺼냈다. 그에 리모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유가 뭐야? 아니, 이유는 충분히 알겠는데-"

 

 

회사가 성장함에 따른 추가 발주, 업그레이드 된 차량을 원하는 고객, 업그레이드를 위해 멧돌에 갈려지는 연구원들. 야근은 기본, 특근, 철야까지 쉴 틈 없이 일한 안젤라였다. 자신이 일을 시킨 것도 있지만 끝을 보지 않으면 계속 생각나서 잠도 못자게 하는 안젤라의 성격탓도 한문제 했다.

 

 

"회장님. 아니, 선배. 제가 여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잖아요. 저도 무작정 지금 당장 그만둔다고 하지는 않아요. 3주간 인수인계는 제대로 할거라구요."

 

"너, 내가 사직서 수리 안해도 안나올 생각이지?"

 

"물론이죠."

 

"하아."

 

 

리모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단순 선후배 사이라서 말하는 게 아니라 안젤라의 능력은 뛰어났다.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는 머리, 문제점을 확인하는 통찰력, 손재주도 있었다. 여러모로 고급 인재였기 때문에 리모는 그녀가 그만둔다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조금 더 생각 해 봐. 이바닥은 인원 충원하기도 어렵잖아. 응?"

 

"일주일동안 고민했어요, 선배. 이제는 좀- 쉬고싶어요."

 

"급여 1.5배 인상해줄게. 응?"

 

 

리모의 설득에도 안젤라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그 모습에 리모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연구원들이 대부분 다른 분야로 진출했기 때문에 더욱 손이 귀했다.

 

 

"후, 일단 나도 생각해볼테니까, 내려가서 업무 마저 해. 이건- 통과시키지."

 

"네, 그럼."

 

 

안잘레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문을 닫자마자 스르륵 주저앉았다. 권리모 특유의 올라간 눈초리는 살짝 바라보기만 해도 째려보는듯한 인상을 주어 그가 사납게 보이도록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털고, 문에 귀를 기대어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였다. 회장실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알아듣지 못할 소리가 들렸다. 안젤라는 한숨을 푹 쉬고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그녀는 걱정없이 다시 연구실로 향했다.

 

 

"어때? 통과됐어?"

 

"그럼요. 우리가 얼마나 애썼는데."

 

"나이스~ 그러면 후딱 퇴근하고 가자. 내가 살게."

 

"와! 공짜 술!"

 

 

내일이 토요일이었기에 그들의 기분은 최고조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망할 결재가 통과되면서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유지원 소장은 물론 다른 연구원들도 각자 이야기를 하며 퇴근준비를 했고, 안젤라 또한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 오늘 차 안끌고 왔는데, 너는?"

 

"전 가져왔죠. 갔다가 대리 맡기면 되니까 어서 가요."

 

"그래, 월요일에 보너스 들어오니까 내가 좋은곳으로 데려갈게."

 

"오오~ 역시 선배가 짱이라니까요."

 

 

자연스레 지원의 팔짱을 끼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원이 간다고 하는 곳은 꽤나 분위기 있는 바였고, 룸과 바로 나뉘어 조용히 즐길 수 있고, 비밀 보장이 좋다는 점에서 상류층 인사들에게도 인기가 많은곳이었다.

 

 

"와, 저 이런데 처음 와봐요. 선배는 많이 왔었어요?"

 

"그냥 뭐, 가끔 오곤 했어."

 

 

둘은 가벼운 칵테일부터 주문했다.

지원은 바에 앉아 의자를 살짝 돌려 안젤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젤라, 너 그만 둘거라며?"

 

"와, 그거 말한지 24시간은 커녕 10시간도 안지났는데 어떻게 안거에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따로 갈데 있어?"

 

"글쎄요...."

 

 

W기업이라는 훌륭한 배경으로 옮겨 갈것이지만 그녀는 당연히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지원은 연구 소장이고, 최악의 경우 기술 유출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안젤라도 적절한 선에서 말을 끊고 일상 이야기로 전환을 돌렸다. 수많은 야근, 가끔 있는 철야는 물론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고 리모의 욕도 자연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 때문에 우리가 들인 시간이 얼만데, 진짜 망할 권회장 같으니라고."

 

"그러니까요... 솔직히, 히끅! 우리가 야근도, 철야도 제일 많이 했잖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연구소에 계속 있는건데."

 

"야, 연구소는 여기보다 더 열악해. 꺼헉, 쥐꼬리만한 예산을 주면서 얼마나 쥐어짜내는지... 쥐어짜다 못해 멧돌에 넣고 간다, 갈아. 너도 연구소에 꽤 있었잖아?"

 

"알지만 그래도 하는 말이죠. 어휴, 같은 학교 선배인데 누구는 이렇게 회장씩이나 하고 있고, 난 일개 연구원이나 하고있고."

 

"우리정도면 나름 성공한거 아닌가?"

 

"하하, 그런가요...."

 

 

이야기를 하며 여러 종류의 칵테일과 술을 시켜 마셨더니 슬슬 열기가 오르며 기분이 좋아진다. 가게 안은 에어컨 바람으로 인해 시원했지만 원체 열이 많은 안젤라는 가디건을 벗어 다리에 덮었다.

 

 

"블랙 러시안으로 한 잔."

 

"어, 그거 꽤 도수 높은건데 괜찮아?"

 

"우리한테 이런날이 얼마나 있겠어요. 잔뜩 마쉬고, 꿀잠 자야죠. 흐흐."

 

"그것도 그러네. 나중에 엉겨붙으면 버리고 갈거야."

 

"아잉, 선배."

 

 

시덥잖은 장난들을 쳐가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둘 다 취기가 오르자 얼굴이 붉어지고, 딸꾹질을 많이했다. 안젤라는 가출하려는 정신줄을 단단히 부여잡고 눈을 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옆을 보니 지원도 온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아니, 그녀가 흔들리고 있는건지 안젤라가 초첨을 못맞춰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마구 흔들거림에도 불구하고 카드를 꺼내 계산했다. 안젤라는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지원은 멀쩡하고, 자신이 취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따악- 한 잔만 하고 가요오오."

 

"아- 알겠어, 알겠어. 나도... 히끅! 너한테 할 말 있으니까..."

 

 

웅얼거리듯 말한 지원은 진토닉을 2잔 시켰다. 안젤라는 모히또가 먹고싶다며 앙탈 비슷한것을 부렸으나 진토닉이 빠르게 나왔기 때문에 그것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입 안 가득 진토닉을 머금고 조금씩 삼켜갔다. 화끈한 느낌이 식도를 지나 이내 배가 따뜻해진다. 안젤라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아, 맞다. 선배, 저한테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아-"

 

 

지원은 얼마 마시지 않은 칵테일을 스틱으로 휘휘 저었다. 안젤라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칵테일을 입 안에 머금었다.

 

딸랑-

 

문이 열리는 작은 종소리와 함께 지원이 입을 열었다.

 

 

"금자야, 너 나랑 사귈래?"

 

"쿠프읍!"

 

 

입 안에 있던 진토닉이 넘어가다 말고 그녀의 발언에 입밖으로 뿜어져나왔다. 지원의 얼굴을 보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다행히 지원에게나, 바텐더에게 튀지는 않았다. 지원은 사레가 걸려 기침을 미친듯이 하는 안젤라의 등을 토닥이며 바텐더에게 물을 한 잔 부탁했다.

 

 

"저기, 손님....."

 

"네?"

 

 

바텐더의 부름에 지원은 그녀를 바라보았고, 바텐더는 슬쩍 눈짓을 하며 안젤라의 옆을 가리켰다. 지원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손수건, 얇은 목걸이, 서늘하게 빛나는 무테 안경 속 눈동자. 제가 보고 있는 여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손수건으로 제 얼굴을 닦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에도 큰 얼룩이 져 눈에 확 띄었다. 치켜 올라간 눈빛이 저를 훑고 지나간다.

 

 

"아, 죄, 죄송합니다!"

 

"......."

 

 

지원은 여전히 사레가 멈추지 않은 안젤라에게 손을 떼고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나같이 고가로 보이는 클러치, 손수건, 블라우스까지. 돈은 문제가 안된다지만 느낌상 좋지가 않다.

 

지원은 난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사과했고, 그녀는 여전히 사레에 걸려 기침하는 안젤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겨우 기침을 멈추고, 안젤라는 지원의 행동으로 제가 술을 타인에게 뿜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래, 분명 작은 종소리가 들리긴 했었지. 아, 여기 올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닐텐데. 망했다.

 

 

"커헉. 죄, 죄송합니...다...?"

 

 

안젤라는 겨우 고개를 들고 제가 실례를 저질렀던 이에게 사과를 했다. 눈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얀색의 상의를 입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안젤라는 눈에 힘을 주며 그녀의 얼굴을 보려했다.

 

흔들리던 시야가 고정되고, 초첨이 잡혔다. 면 티로 보였던 옷은 어느새 최고급 원단으로 짜여진 블라우스가 되어있었고, 이상한 낙서로 보이던 손수건은 모 브랜드의 한정판이었던 것이 보였다. 그리고 무언보다-

 

 

"서, 선배-?"

 

"미-스-안-젤-라-"

 

 

낮게 끓는듯한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다름 아닌 얼마전 제게 스카웃 제안을 한 왕소라였다.

 

 

"서- 선배. 아니, 지원선배 말고 소라선배. 그러니까, 이게."

 

 

사레로 인해 얼굴이 벌게진 안젤라는 생각했다.

 

아,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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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나가고 무더운 폭염때문에 잠들지도 못하는 밤이었다. 안젤라는 짜증스레 휴대폰 화면을 키며 시계를 확인했다. 겨우 22시 9분. 잠들기에는 이른시간이지만 철야를 추가근무를 넘어 철야까지 뛴 안젤라로서는  잠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에어컨 리모컨을 보며 켤까, 말까 고민하던 그녀는 이불 구석으로 리모컨을 던져버리고 일어나 얇은 집업 하나를 걸쳤다. 내일도 휴무이고, 낮에 잠을 잤으니 산책로라도 한 번 뛰고 오면 피곤해서 더 잠이 잘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휴대폰만 챙기고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맷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바람이 불고 그로 인해 불쾌지수는 높아져만 갔기에 안젤라의 표정은 필 수가 없었다.

 

탁탁탁탁.

 

바닥을 울리며 뛰는 소리가 경쾌하기 그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바람에 식히니 몸이 시원해졌다. 속도를 줄이며 걸으니 다시 온몸의 열기가 후끈하게 올라온다.

 

안젤라는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두러보았다. 집에가서 샤워를 하는건 둘째 문제 치고, 당장 타들어가는 목을 식힐만한게 필요했다.

 

가까이 보이는 BR31에 화색을 띈 안젤라는 당당히 가게에 입성했고, 아이스크림을 보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달콤한 초콜릿? 아니, 초콜릿은 칼로리가 높으니까... 상큼한 딸기? 톡톡 터지는 슈팅스타?

 

여러종류의 아이스크림에 안젤라는 잠시 고민하다 파인트 사이즈에 3가지 맛을 고르기로 했다. 선택지가 3가지로 늘어나니 그것도 고민이다. 열심히 맛과 칼로리를 비교해가며 고르고 있을때 딸랑이는 종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은 관심밖이었다.

 


"파인트로 체리쥬빌레,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사랑에 빠진 딸기요."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네. 나도 이 결정장애좀 없애야할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보던것을 말고 허리를 폈다. 나도 그냥 상큼하게 저렇게 시켜야지.

 


"사랑에 빠진 딸기,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체리쥬빌레로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손님, 계산하시겠어요?"

 


먼저 주문한 사람이 계산 후 다음 사람것을 계산한다. 밤이라 근무 인원도 1명. 안젤라는 짧게 대답하며 의자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만끽했다.

 


"이런..."

 

"저, 손님. 무슨 문제가?"

 

"...휴대폰 전원이 꺼져서."

 


하긴, 요즘 누가 카드를 들고다녀. 안젤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득 목소리가 참 허스키하다고 생각했다. 목이 마르긴 엄청 마른가보네. 여자는 난처한 목소리로 휴대폰 충전기가 있냐 물어보는 말에 직원은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깊은 한숨소리와 함께 뒤돌았다.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팬츠를 입은 모습은 깔끔했다. 안젤라는 무의식적으로 여자의 얼굴을 올려봤다.

 


"헙."

 

"응?"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헉소리가 나왔다. 안젤라는 다급히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만지는척 했지만 이미 그녀의 시선이 닿은 후였다.

 


"저기...혹시 봉-"

 

"저 그런사람 아닙니다."

 


안젤라, 이 멍청이!
안젤라는 제자신을 자책하며 휴대폰에 이마를 박았다. 이미 저를 보른 그녀도 알아차렸다. 그녀는 더이상 모른척 해봤자 소용 없다는것을 깨닫고는 살며시 얼굴을 들었다. 새하얀 얼굴에 차가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무테안경. 안쪽으로 만 머리카락.

 


"맞네, 봉금자!"

 

"아, 하하. 안녕하세요... 소라선배."

 


저 조그마한 입에서 터져나오는 자신의 본명. 그러지 않은척 하지만 저 직원, 분명 웃었다. 그래서 고개 숙이고 있잖아. 안젤라는 제 고등학생 시절 선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숨기고 싶은 과거를 아는 사람 중 한명.

 


"오랜만이네. 많이 변했는걸?"

 

"아, 하하. 그렇죠, 뭐."

 


그래, 많이 변했다. 이 변화를 위해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대학 재학중 울며겨쟈먹기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공대에 귀한 여학생이어도 망할 외모지상주의는 미팅자리에 끼지도 못하게했다.

 


"그나저나 나랑 같은 맛이던데..."

 


금자... 아니, 안젤라는 소라의 말을 듣고 짐작했다. 오늘도 내 지갑이 무사하긴 글렀군. 많이 먹을것도 아니니, 하나만 사서 갈라먹자고 하면 될 듯 하다.

 


"제거 같이, 드실래요?"

 

"정말? 고마워."

 


당연히 그냥 하는말이잖아요. 젠장할, 젠장할.
안젤라는 속으로 한탄하며 제가 계산했다. 직원의 얼굴을 보니 불그스럼한게, 속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게 뻔했다.

 


"여기서 먹을래요? 아니면 밖에서?"

 

"내 차에 가서 먹자."

 

"차 끌고 왔어요?"

 

"아, 지금 퇴근중."

 


안젤라는 그 말에 시간을 확인했다. 22시 50분. 그리고 소라의 얼굴을 보니 땀이 범벅인걸 볼 수 있었다. 안젤라는 그녀의 말을 밖으로 나가면서도 몇년만에 보는, 그것도 친하지도 않았던 선후배 사이인데 꽤 오랜 인연을 만나는 듯한 소라의 행동에 의심이 들었다. ...설마, 장기밀매조직인건 아니겠지?

 

잘은 모르지만, 학창 시절때 개인 기사까지 부리던 소라였으니 그건 아니라 굳게 믿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선배 차는 어디있어요?"

 

"응? 여기 있잖아."

 

"헐."

 


안젤라는 순간 딸꾹질이 나오려는걸 참았다. 긴 몸체와 세련된 코팅, 감각적인 디자인. 시가 10억에 달하는 자동차를 직접 눈으로 본 안젤라는 입이 안떨어졌다.

 


"차가 좀 작지? 간단하게 출퇴근용이라서. 조금 부끄럽네."

 


작아? 작아? 이게? 4인용이긴 하지만 안쪽 공간이 충분하고, 소파 부분을 뉘일수 있어서 여러명이 앉아서 가기도 좋고, 차 안에서 편히 잘 수도 있다. 그 외에 소형 냉장고라던가, 빵빵한 음향지원이라든가는 기본옵션이고.

 


"하, 하하. 음... 성공하셨네요."

 

"글쎄. 요즘 넌 뭐해?"

 

"전 그냥, BM 연구진으로 있어요."

 

"아, 권리모가 회장인 거기?"

 

"아, 알아요?"

 

"알다마다."

 


아이스크림 뚜껑을 연 소라는 한숟갈 듬뿍 떠서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멍히 보다 안젤라도 한 입 먹었다. 시원하고 상큼한 느낌이 입안에 퍼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한입. 아, 체리 씹혔어. 기분좋아. 안젤라는 한입씩 과육을 즐기며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소라의 차는 시원했고, 조용했다.

 


"요즘 그녀석 때문에 얼마나 골치인지."

 

"아, 그래요?"

 

"아, 여기 연구진이 있으니 물어보면 되겠네. 혹시 권리모 걔-"

 

"아아아안돼죠 선배. 하하. 잘 아시는 분이... 아, 그나저나 선배는 직장이 어디에요?"

 


소라의 급작스러운 질문이 다가오기전에 애써 화제를 돌렸다. 소라도 그냥 한 번 해본말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제가 근무하는 곳에 말했다.

 


"아, W그룹 사장이야."

 

"아, 그렇군요. W그룹... .....네?!"

 

"몰랐어?"

 

"그,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다른 애들은 다 알던데."

 


그러고 보니, 20년 정도 된 기억 속 저편에 항상 왕소라가 지나갈 때면 무슨 기업이, 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딱히 친구가 없던 안젤라 였던지라 그녀만 몰랐던 것이었다.

 


"그래서- 권리모가 잘해줘?"

 

"네? 아, 네..."

 


잘해주나? 고등학교, 대학교 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을 졸업 후 권리모와 그의 친구 차도운은 우수한 성적으로 연구소에 스카웃 됐었다는 것 까지는 안다. 그녀도 가고싶어 했던 연구소였으니.

 

뉴스 전체를 휩쓸었던 화재 사건이 있던 후 소식이 끊겼다가, 제가 연구소에서 나와 다른 구직자리를 알아 볼 때에 연락이 닿았던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 리모는 안젤라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너 꽤, 경력이 괜찮더라? 우리 회사 올래?"

 

"네?"

 


안젤라는 그 말에 깜짝 놀라 소라를 쳐다보았다. 분홍색 스푼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약간 어색해보였지만, 중요한것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한건지 자각을 못하는 듯 소라는 아주 태평하게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었다.

 


"지금 그거, 농담이시죠?"

 

"내가 너한테 농담을 해서 뭐하겠니."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제 경력은 어떻게 아신거에요?"

 

"말 한마디면 모든 정보가 나한테 넘어오는데, 뭘."

 


아, 이 선배.. W그룹 사장이라고 했었지.


원체 학창 시절에 안면만 아는 사이여서 그런가, 안젤라는 소라가 매우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 보통 십수년 만에 만나면 이렇게 차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퍼먹진 않겠지.

 


"급여는 지금 다니는 회사의 두배면 되나?"

 

"할게요."

 


아, 순간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와버렸다.
안젤라는 제가 말을 뱉고도 급히 입을 막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소라는 그녀를 보며 의미모를 미소를 지었다.

 


"하, 하하. 그러니까 제 말은-"

 

"기다려주지, 뭐. 한달이면 되나?"

 

"...진심이세요?"

 

"방금도 말했는데, 난 농담따먹기를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아니, 그게 아니라."

 


햇수로 따지자면 20년이다. 그녀가 졸업을 하고 나서는 따로 연락이 닿았던 적이 없다. 동창회같은것도 나오지 않았고, 연락처도 바뀌고, 심지어 리모를 통해 유학을 갔다는 소리를 들었을땐 자시만 조금 친했던 사이라고 착각한거라며 끝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하잖아.'

 


사실 이게 회사 차고, 그녀가 불법 조직같은 곳에 다닌다면, 자신의 인생은 그대로 아웃 아닌가? 그리고 BM모터스 같은 경우는 저와 리모가 장난쳐놓은 기능도 있었다. 만약 그것을 버린다면-

 


"이건 내 명함이야. 대외에는 전문 경영인을 세워놓으니 니가 당연히 모를수도 있겠네. 뭐, 강요는 아니니까 가볍게 생각해."

 


그러니까, 당신이라면 이걸 가볍게 여길 수 있냐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안젤라는 차마 그것을 뱉을수가 없었다. 대신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스푼 떠서 그대로 입에 집어넣었다. 대놓고 욕심을 보이는 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스스로가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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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 전력 100분 72회 주제 아이스크림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아무리도 2편이나 3편이 나올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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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mo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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